
[아유경제=김진원 기자] 당정이 서울 지역 500가구 이하 재개발ㆍ재건축사업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청장에게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주택 공급을 앞당기겠다는 취지지만, 주요 인ㆍ허가 대부분을 이미 자치구가 담당하고 있어 실효성이 낮고 행정 혼선과 난개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본보는 당정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 이양 방안과 그 배경을 살펴보고, 실효성 논란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당정, 500가구 이하 정비구역 지정권 자치구 이양 추진
더불어민주당 "인ㆍ허가 병목 해소하고 서울 도심 주택 공급 앞당길 것"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지난달(8월) 23일 국무총리 공관에서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서울지역 500가구 이하 재개발ㆍ재건축사업의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자치구청장에게 이양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자치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입안해 주민공람과 지방의회 의견청취를 거친 뒤 서울시에 신청하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서울시장이 정비구역을 지정ㆍ고시한다.
당정은 이 과정에서 서울시에 집중된 심의와 결정 권한이 사업 초기의 병목으로 작용한다고 판단했다. 500가구 이하 사업은 자치구가 정비계획 수립부터 구역 지정까지 마치도록 해 행정단계를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박성준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협의회 직후 "신속한 주택 공급을 위해 권한 이양을 통한 인ㆍ허가 기간 단축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서울시 구청장들의 요구를 반영해 관련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권한 이양을 요구해 온 일부 자치구는 정비계획 수립부터 구역 지정까지 자치구가 맡으면 행정절차가 간소화돼 사업 초기 소요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역 실정을 반영한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해 서울 도심의 도시정비사업과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일각에서 제기하는 난개발 우려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공통된 도시계획 지침을 마련하면 통제가 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사업 규모가 클수록 일반분양 물량과 사업성을 확보하기 쉬운 만큼 빠른 구역 지정을 목적으로 사업지를 500가구 이하로 나눌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게 일부 자치구 측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최근 구청장에게 관련 권한을 부여하고 조기 인ㆍ허가와 착공에 각종 유인책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당정은 이를 통해 서울 도심의 민간 도시정비사업을 활성화하고 수도권 주택 공급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사업기간 단축 효과 미미"… 업계도 실효성 의문
전문가 "권한 이양, 난개발과 행정 혼선 키울 수도"
하지만 서울시는 당정 방안이 도시정비사업 현장의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개별 구역의 주택 건설에 그치지 않고 용적률과 높이, 교통ㆍ학교ㆍ도로ㆍ공원 등 정비기반시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에 따르면 도시정비사업의 주요 행정 절차 9개 가운데 추진위구성승인과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착공ㆍ준공ㆍ입주 관련 업무 등 7개는 이미 자치구가 담당한다. 서울시 소관은 정비계획 결정ㆍ고시를 위한 심의와 사업시행인가 전 통합 심의 등 2개다.
500가구 이하 정비사업장 193곳 가운데 164곳은 이미 정비구역 지정을 마치고 자치구가 담당하는 후속 단계에 들어갔다. 권한 이양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업장은 약 16%에 불과한 셈이다.
신속통합기획 사업을 기준으로 분석해도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132곳ㆍ16만555가구 가운데 500가구 이하 사업장은 18곳ㆍ6087가구로, 전체 계획 물량의 3.8%에 그친다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과 통합 심의 등을 통해 심의 기간을 이미 단축했다고 반박한다. 정비구역 지정 심의와 통합 심의에 걸리는 기간은 총 4개월가량으로, 평균 약 12년인 전체 도시정비사업 기간의 2.7%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오세훈 시장 역시 지난달(8월) 27일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시가 도시정비사업을 지연시킨다는 당정의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조합 내부 갈등과 공사비 증액, 각종 소송, 이주비 조달 및 착공 지연 등 구역 지정 이후의 문제가 사업 기간을 늘리는 핵심 요인이라는 주장을 전했다.
이어서 오 시장은 "권한 이양 대상을 500가구 이하로 정한 근거도 불분명하다"며 "500가구로 할지 700가구로 할지 기준은 없다"고 덧붙였다.
도시정비업계에서는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자치구로 분산되면 행정의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용도지역 상향이나 교통ㆍ환경 관련 사항은 여전히 시와 협의해야 하는 만큼 기관 간 이견으로 후속 절차가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치구별 전문 인력과 도시정비사업 경험의 차이로 동일한 조건의 사업도 심의 기준과 처리 기간이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치구별 난개발과 사업의 정치화 가능성도 문제로 꼽힌다. 지역 민원이나 선거를 의식해 정비구역을 지정하거나 사업지를 500가구 이하로 나눌 때 시 전체 도시계획과의 정합성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이에 권한 재배분보다 조합 갈등과 공사비 분쟁, 이주비 대출 규제 등 구역 지정 이후의 실질적인 지연 요인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관 업계 한 전문가는 "도시정비사업장이 적은 자치구에서는 특정 사업장 주민들의 민원이 각 청장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표심행정이 발생하고 시의 조정ㆍ견제 기능까지 약화하면 정비구역만 난립하며 서울이 쪼개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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